'수난이대' 작가 하근찬 선생 별세

2007/11/27 01:09

한쪽 다리 없는 아들을 업은 한쪽 팔 없는 아버지… 전쟁 상흔 응시한 그 눈감다 @ 네이버뉴스

수난이대를 학창시절에 읽을 때는 전쟁의 상흔이 너무 잔혹하다고 생각했었지요. 이 소설을 읽은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 줄거리는 아직도 머릿 속에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이 사람들에게 가져온 슬픔이 이런 거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만 했었는데요, 나이가 들면서 이게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됬습니다. 동족 상잔의 비극 6.25 전쟁은 저의 가족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한참 나이들어서 깨닫게 된 것이지요.

제 친할아버지께서 이 6.25 전쟁에 참전하셔서 전사하셨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가난이 극심했던 시기에 할머니께서는 의지할 데가 없게 되셔서 온갖 장사를 다 하시면서 힘들게 아버지와 고모를 키우시게 됩니다. 본래 증조 할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땅이 꽤 되는 동네 유지신 까닭에 처음에는 집안에 머슴도 두고 편하고 여유있게 지내셨다는데요, 큰 댁에서 증조할아버지께 물려 받은 이 많은 재산을 탕진해버려서 할머니께서 어렵게 사시게 됩니다. 아무것도 모르시는 할머니께서 따로 상속받으셔야 할 재산까지 함께 탕진해 버린 것이지요. 가사탕진한 이유는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노름 빚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언뜻 들은 것 같은데 어려웠던 시기였던 만큼 특별히 여기저기 돈을 지출할 데가 많지 않았나 싶내요. 그리고 큰 댁에서 돈 욕심이 너무 많으셨다 합니다. 딸린 피덩어리를 데리고 마땅히 살 곳이 없으신 할머니께서는 증조할아버지를 모시고 계시는 큰 댁에 얹혀 살면서 독하신 큰할머니 눈치보시면서 심하게 시집살이 하시면서 사시게 됩니다.

할아버지 형제분들이 남자 삼형제이셨는데 저희 할아버지께서 둘째이셨지요. 큰 할아버지는 지병으로 오래전에 별세하셨구요, 셋째 할아버지는 6.25 사변때 북에서 못내려 오셔서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어려운 환경 때문에 생이별을 한 사람들을 다시 찾아주는, 아침에 하는 TV 프로그램 아침마당 보시면서 셋째 할아버지를 가끔 회상하시더군요. 셋째 할아버지께서 유독 할머니께 잘해주셨다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말씀으로는, 아버지 친구분들 중에 초등학교 동창들은 현재 의사분들이 많다고 하시구요, 중,고등학교 동창들은 주먹 꽤나 쓰는 친구들이 많다 하시더군요. 그 시절에도 교육에 대한 열의가 부모들 사이에 굉장해서 부잣집 자식들만 다니는 사립초등학교를 다니시다가 가사탕진으로 집이 어려워져서 몇 단계 급이 낮은 초등학교로 전학가게 되셨다 하시더군요. 하지만 사촌인 큰할머니 자식들은 여전히 사립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하시더군요. 큰할머니께서 아버지와 고모만을 따로 차별하신 거지요. 큰할머니 때문에 무지하게 힘드셨다고 합니다. 시부모는 별말씀 없으신데 얹혀 사는 할머니가 밉게 보였던지 별세하시기 전까지 함께 사시면서 할머니를 무지하게 괴롭히셨다고 하시내요.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시면 치를 떠십니다. 오히려 시어머니, 증조할머니께서 할머니를 많이 안타까워하시고 아끼셨다고 하시더군요. 후에 분가하실 때 증조할머니도 모셔와서 함께 사셨다 합니다. 나중에 증조할아버지께서 별세하시면서 할머니께서 물려 받아야 할 재산도 큰 댁에서 가로채 모두 탕진해 버립니다. 심지어 할아버지 6.25 참전 용사 보훈 연금도 십여년 동안 가로채서 받으셨다고 하시더군요.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보훈 연금은 큰 액수의 돈이었을텐데요, 이 마저도 중간에서 가로챈 것이지요.

이런 까닭에 큰 댁에 얹혀 살면서 안해본 장사가 없으실 만큼 힘들게 생계를 꾸려나가셨다 합니다. 본래 순하신 성품이신데 전쟁과 가난 그리고 큰 동서로부터 멸시를 겪으시면서 무지하게 독하신 성품으로 변하시게 됩니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힘들게 장사를 하는 어느 시장거리의 아낙네 모습처럼 고집센 성품으로 변하시게 된 것이지요. 거기에 그 시대 어머니상이 그러하듯 남아선호 사상이 무지 강하셔서 아버지만 무지하게 편애하시고 고모는 엄하게 키우시니 고모가 겪었을 시련이 대중 눈에 보이지요. 이 시련은 이제 제 어머니에게 옮겨지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어려운 가정형편때문에 삼사관학교를 나와서 소위로 임관하시고 자대배치를 받으면서 드디어 큰 댁에서 따로 분가하시게 되지요. 그리고 십여년 군생활 하시다가 대위로 전역하시고 직장을 얻어 사회생활을 하시게 됩니다. 그리곤 어머니를 만나게 되시지요.

어머니의 시집살이 또한 이때부터 시작되게 됩니다. 사람 성품은 환경에 의해서 많이 변한다 하지요. 지금까지 할머니 인생사를 읽어오셨다시피 성품이 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큰할머니의 멸시가 주요 원인이겠지요. 지금 연세가 여든을 넘으셨는데 여기저기 쑤실 때마다 큰동서 그년, 큰동서 그년.... 하시면서 예전 기억을 떠올려 시간가는 줄 모르게 욕설을 내뱉으십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는지라 이젠 만성적으로 되버렸지요.

고집세고 무엇이든 사사건건 모두 간섭하는 시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시집살이가 시작된 것이지요. 추측하거니와 할머니께서는 30여년 동안 크게 의지해 왔던 아들을 빼앗긴 상실감이 고집세고 독한 성격을 부추겨 어머니에게 많은 시련을 안겨다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느 며느리였으면 독한 시어미니 시집살이에 혀를 내누르고 도망갔을텐데요, 어머니는 현명하게 할머니를 잘 다독거리시면서 또는 많이 부대끼고 싸우시면서 지금까지 잘 지내시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유년시절을 아버지 없이 보내시게 되지요. 프로이트는 유년시절의 경험이 한 인간의 성품을 결정짓는다고 했습니다. 유년시절에 느꼈던 감정들이 평생을 살면서 반복된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할아버지의 부재(不在)는 아버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할머니의 인생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구요. 또한 할머니와 아버지를 통해 나머지 식구인 어머니, 저 그리고 여동생 또한 할아버지의 부재(不在)를  여실히 느끼며 살아오게 되었지요.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분가해서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살았을 터이니 큰할머니로 인한 할머니의 시련은 없었을터이고 거기에 맞물려 어머니의 시련 또한 없었을 것이며 아버지 또한 할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셨을 것이고 저 또한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할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많은 일들을 겪지 않고 더 재미있게 살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든이 훌쩍 넘으신 할머니께서는 그 성정은 여전하시지만 요새는 많이 꺽이셨지요. 어머니를 휘어잡던 기세는 많이 수그러드시고 이젠 어머니 눈치보시면서 사십니다. 당연한 이치인 것 같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 정확하지요. 요즘 시력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안과에 한번 모시고 가서 진찰하고 안경을 맞춰 드렸더니 안경 덕에 요즘 더 활기차게 지내십니다.

6.25 전쟁으로 인해 겪은 슬픔의 주인공들은 알고보니 사실 그리 멀지 않은데 있었더군요. 나이를 한살 두살 계속 먹다보니 자연스럽게 깨닫게 됬습니다. 어릴 때는 '수난이대' 와 같은 6.25 전쟁과 관련된 소설을 보면 나와는 아주 먼 이야기 같았었지요.

동족 상잔의 비극을 주로 소설로 다루었던 '수난이대'의 작가이신 하근찬 선생님께서 향년 76세의 연세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더 안타깝게 들려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인의 삼가 명복을 빕니다.

지인우인 일상의 이야기 , , , , , ,

2007/11/27 01:09 2007/11/27 01:09
Trackback Address:http://leegh.com/trackback/2694139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