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병원에 세균학을 가르치기 위해 선교사로 옴.
민족대표 33인의 한명인 이갑성의 요청으로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의 독립선언과 3.1 만세운동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세계에 알림으로써 해외로 3.1운동이 확산되는데 큰 역할을 함.
또한 역사 속에 묻힐 뻔 했던 일본의 제암리 학살 사건을 카메라에 담고 글로 해외에 일본의 만행을 알림.
이외 서대문 형무소의 폭정과 같은 일제의 만행을 외국 언론에 알리는 일을 계속해오다 일본에 의해 암살당할 뻔 하고 결국 일제의 강압으로 세브란스 병원이 문닫을 위험에 처하자 결국 캐나다로 돌아감. 돌아갔다기 보다는 강제추방이죠.
광복 후에 국가적인 환영행사를 받으며 다시 한국에 옴. 서울에 살면서 서울대, 연대, 중앙대에서 강의하며 후학 양성에 힘씀. 작년에 이임한 전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그의 제자임.
고아들을 돌보고 독재정권에도 항거하였으며 1970년에 지갑과 여권만 유품으로 남긴채 하나님의 품에 안기심.
1960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 안장하신 유일한 외국인입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3.1절을 맞아 석호필 박사 뿐만아니라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많은 선인들이 계셨기에 지금 이렇게 살 수 있음을 감사히 여기며 순국선열들의 높은 뜻을 기립니다.

<관련기사>
"34번째 민족대표 석호필도 아시나요?"
<동영상>
(특집다큐멘터리) 민족대표 34인 석호필
<누리집>
서울대학교 석호필 박사 기념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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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1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네요.. 놀라운 사실 알고 갑니다.^^
2007/03/01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처음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석호필과 동명이인임을 말이죠.
2007/03/01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올블로그를 지나가다 글 남깁니다.
원래 프리즌 브레이크의 스코필드역의 별명 석호필은 바로 저분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겁니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스코필드님을 알고 의도한대로 만들어진거에요.
게다가 원 이름까지 같으니 쓰기 딱이었겠죠.
혹시 모르셨을까봐 적어봤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07/03/01 1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이 소식도 석호필 박사 이야기만큼 새롭내요.
2007/03/02 1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스토리 추천에 링크 되어있어 구경왔다가 좋은 내용 보고 갑니다.
2007/03/02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
2007/03/24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실존 인물이었군요. 인터넷을 더 찾아 봐야 겠습니다.
2007/03/24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그러셨군요. 저도 처음엔 많이 놀랐습니다. 더 자세한 정보는 위에 링크걸어놓은 ebs 방송을 보시면 확연히 아시게 될겁니다.
2007/03/24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찾아 보니 서울대학교에 기념 홈페이지가 있더군요. 위의 제가 보낸 트랙백을 보면 기념 홈페이지의 URL이 있습니다.
2007/03/24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서울대에 기념 누리집도 있었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